구독자 님은 정리가형? 수집가형? 안녕하세요, 시소레터입니다.
문학을 사랑하시는 분들이라면 솔깃할 만한 이야기가 찾아왔는데요.
일주일 간 낭독회부터 북토크까지 알찬 프로그램으로 이뤄져 있는데요.
올해는 '도움 닿기'를 주제로, 우리를 더 먼 곳까지 도약하게 하는 구름판 같은 문학을 이야기한다고 해요.
아직 행사까지 시간이 남았으니 관심 있으신 분은 미리 예매를 하셔도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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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에디터 직접 찍음
구독자님은 정리를 잘 하는 편이신가요?
청소와는 또 다른 정리 말이에요.
필요에 따라, 기호에 따라 분류해서
더 이상 쓰지 않을 것들은 버리고
남을 것들은 잘 간직하는 일이요.
고백하자면, 저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잘 하지 않는 편입니다.
어렸을 땐 아직은 버릴만큼 무언가가 쌓이지 않아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크고 나서도 여전한 걸 보니 그냥 제 성향 같더라고요.
어떤 물건이든 관계든, 그것의 역사를 버리는 기분이 들어
자꾸만 주저하게 됩니다.
이번주는 이런 '정리'에 대한 콘텐츠를 가져와봤어요.
정리가 필요한 걸 알아도 하고 싶지 않은 에디터들의
은근한 자기 방어로 생각해주셔도 될 것 같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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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데이 (One Day)
👉 출연 : 암비카 모드, 리오 우들 외
👉 원작 : 데이비드 니콜스의 소설 <원 데이>
‘정리하다’라는 단어에는 많은 뜻이 있더라고요. 흐트러지거나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는 것을 치워서 질서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도, 문제가 되는 것이나 불필요한 것을 줄이거나 없애서 바로 잡는 것도, 타인과의 관계를 끝내는 것도… 뭐가 됐든 말끔하고 깨끗하게 만드는 것을 그 단어로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물건도 관계도 가끔은 그런 ‘정리’를 하지 않고, 그저 그 상태로 두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어떤 기준으로도 그걸 판단하고 싶지도 않고 분류하고 싶지도 않은 그런 기분이 들 때요.
이 작품은 대학 졸업식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한 남녀가 1988년부터 2007년까지 20년간 매년 7월 15일마다 어떤 관계에 놓이게 되는지를 그려낸 이야기인데요. 처음엔 고작 하루뿐인 만남으로 부잣집 바람둥이 덱스터에게 사랑에 빠졌지만 그것을 계속해서 부정하며 친구로 남기로 택한 엠마도, 그리고 그런 엠마의 감정을 모른 척 응해주는 덱스터도 잘 이해가 되지 않고 답답하기만 해서 왜 이 작품이 재밌다는 건지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요. 지나간 세월의 흔적도, 서로의 관계도 정리 하지 않고 그 상태 그대로 그저 두고 싶어 했던 두 사람의 마음이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해가 됐습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고단한 삶의 여정 속에서 흔들리지 않을 것이 무엇 하나쯤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물론 이 두 사람의 결말은 결국 처음과는 달랐지만, 그 때의 마음과 의도는 너무나 공감이 됐어요.
무언가를 정리한다고 해서 그게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냐고 묻는다면, 제 대답은 아마 영원히 ‘아니’ 일 것 같습니다. 정리하지 않는 것이 그것의 최선일 수 있다는 점을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실감하고 있거든요. 그저 그렇게 두었을 때 가장 아름다운 것들이 생각보다 꽤나 많았습니다. 뭐 은근슬쩍 그걸 핑계로 정리를 미루고 싶은 제 못된 마음일 수도 있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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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apest flight
👉 노래 : PREP
I'll take one more sleepless night
딱 하루만, 잠 못드는 밤을 보낸 후에
Then book the cheapest flight
제일 값싼 비행기표를 끊겠어
Buy my head some space to clear
내 머리를 좀 비울 수 있을 공간에 값을 지불할래
There's no time to cut and run
황급히 달아날 시간조차 없으니
최근에 이사를 하게 되면서 주말마다 시간을 내서 집 정리를 했습니다. 앞으로 더 이상 보지 않을 것들은 버리고, 간직하고 싶은 추억들은 상자에 담았습니다. 정리라는 건 지금 굴러가고 있는 제 일상에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 잠시 뒤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쉽사리 그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리는 경우도 잘 없다가도, 이렇게 강제적으로 상황이 주어졌을 때에서야 비로소 하게 되더라고요. 이제는 당장 눈앞에 있는 것들을 소화하기에도 바쁜 삶, 돈보다도 시간이 제가 치러야 할 제법 큰 비용이라서요.
저만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저는 비행기만 타면 그렇게 앨범 정리를 합니다. 평소엔 사진을 찍고 저장하느라, SNS에 올릴 사진들을 골라내느라 바빴다면 왠지 인터넷이 되지 않는 그 시간 동안만큼은 제가 가진 사진들을 선별하고 지우는 일들을 하게 됩니다. 단순한 작업인데, 고작 비행기를 타는 시간 동안에도 금방 해낼 수 있는 일인데도 그 시간이 아니면 잘하지 않게 되는 일입니다. 정리를 하기 위해 가장 값싼 비행기표를 사겠다는 이 노래의 가사가 사치스럽게 들리지 않는다면, 구독자님도 저와 같은 마음이실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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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 : 촌뜨기들
👉 출연 : 류승룡, 양세종, 임수정 외
요새 제가 꽂힌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페어링이라는 건데요. 흔히 술과 안주의 조합을 논할 때 쓰면서, 궁합이 좋을 때 쓰잖아요. 왜인지 그 단어를 음미하다 보면 세상 모든 거에 짝꿍이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럼 제 이름 옆에는 무엇이 놓이게 될까 하면서요.
아마 근데 제 옆에는 특정한 사람이나 사물이 오기보단, 연쇄적으로 무언가들이 줄줄이 올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미니멀보다는 맥시멀의 아름다움을 믿는 사람이거든요. 잠깐, 그러면 페어링의 본 의미가 퇴색되는 건 아닌가 싶은데요. 저와 같이 버려지지 않은 것에는 숨은 이야기가 있다고 믿는 분이라면, 이 시리즈도 마음에 드실 거라 믿습니다.
<파인 : 촌뜨기들>은 70년대 신안을 배경으로 난파된 보물선을 찾는 인물들을 그렸는데요. 처음엔 둘로 시작했던 무리에 한 둘씩 모여들며 판은 커져 갑니다. 그렇다고 해서 끈끈한 의리가 그들을 묶어주느냐하면 그것도 아닌데요. 우리처럼 보물의 존재를 믿는 그들이 진짜 ‘한탕’ 할 수 있을지는... 역시 봐봐야 알겠죠?
🍋 디즈니 플러스에서만 볼 수 있대서 저도 일단 구독 시작했어요 (1-2화 하이라이트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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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논한 것처럼 저는 정리를 주제로 호기롭게 꺼냈지만, 정리보다는 수집 아니 수집보다는 한껏 뭉쳐 놓기를 좋아하는 못 말리는 유형입니다. 딱콩. 그래서 저는 정리를 유튜브를 보고 배우는 편이에요. 번번이 실패해서 문제지만요.
제가 가장 최근 정리를 배운 영상을 하나 공유하고자 합니다. 퀸가비의 친구이자 청하와 함께한 댄서로 유명한 또또의 유튜브 <청또부>인데요. 얼굴에 분명 춤도 없고 청소도 없는데 멀끔하게 잘 해내는 그가 신기하게 느껴지는 와중에, 주변인들의 의뢰를 받아 청소를 해주러 가는 시리즈입니다.
1화에서는 비전문 정리인에게 아주 획기적인 개념 ‘조닝(Zone+ing)’이 등장합니다. 구역을 나누어서 목적과 분류에 맞게 물건을 정리해야 한다는 또또의 지론인데요. 무언가를 사서 방 안에 흩뿌려 놓을 줄만 알았던 제게는 큰 가르침이었습니다.
원고를 쓰고 있는 제 뒤로 신작 서적들과 세탁기를 나선 옷가지들이 방안을 훈훈하게 채워주고 있는데요. 요새 사실 훈기를 넘어 정신 사나움..을 느끼고 있어서 이번 주말에는 저도 ‘조닝’을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구독자님, 꼭 제가 정리를 성공할 수 있게 빌어주세요. 아니면 저희 집에서 같이 해주셔도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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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코'S PICK <그들이 보지 못할 밤은 아름다워>
구매처 : 서점 (*서울국제도서전)
가격 : ₩ 17,000
#지구를_벗어나도_거기서_거기라면
지난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던 출판사 허블에서 여름 첫 책으로 선정된 소설입니다. 한동안 출판계에 SF 소설 바람이 불면서 읽는 책마다 SF였던 시절이 있었는데 또 어느 순간 눈에서 멀어지니까 잊고 있었는데요. <그들이 보지 못할 밤은 아름다워>라는 꽤나 감성적인 제목을 보고 이끌려 구입했어요.
총 여섯 편의 이야기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는 연작 소설인데요. 지구를 떠난 탐사대가 지구와 등을 돌리고 그들만의 사회를 구축한 미래 사회의 우주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인간인 듯 아닌 듯 그 새로운 생명체들을 묘사하고 있지만, 잘 보면 다 인간이었습니다. 끔찍하기도 하고 더없이 아름답기도 하고 반짝거리기도 하는 그런 인간들 말이에요. 권력을 가진 이는 그것을 유지하고 더 확대하기 위해 온갖 기이하고 추악한 행동을 하지만, 그런 어지러운 사회 속에서도 사랑의 힘은 여실히 빛이 납니다.
문명이 아무리 진보해도 결국 우리는 지금 우리가 아는 이 사회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정말 잔혹동화 같아서 슬프기도 했습니다만 그 와중에도 빛나는 어떤 존재들을 만나면 또 살만한 것 같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하더라고요. 혹시나 나중에 영상화가 된다면 좋을 거 같은 독특한 이미지들이 많이 떠올라서, 은근슬쩍 기대를 해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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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선'S PICK <양과 강철의 숲>
구매처 : 서점
가격 : ₩ 16,800
#시작하는_사람의_아름다움
얼마 전 본가를 갔다 오래전에 읽은 책을 다시금 꺼내 들었습니다. 한번 읽은 책 혹시 온전히 다 기억하시는 편이신가요. 저는 어디 편집자나 문학 애호가가 나오는 유튜브를 보면, 줄거리부터 등장인물 이름도 놓치지 않고 말씀하는 걸 보면 대단하단 생각부터 들더라고요. 맞습니다. 기억이 안 나서 재독을 시작했어요.
소설의 제목은 피아노를 이루는 재료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어린 시절 체육관에서 본 것을 시작으로 피아노 조율에 매료된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요. 저를 집중하게 한 건 평범하고 건조한 청소년기를 보내던 그가 정답이 없는 ‘조율’의 세계로 출발하는 책의 초반부였습니다.
선배들과 고객을 만나며 자연스럽게 시작한 직업인으로서의 고민, 그리고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가 피아노 선율처럼 부드럽게 펼쳐지는데요. 매 챕터를 채우는 비유 표현들과 함께, 주인공의 마음을 독자로 하여금 자연스레 알아차리게 하는 문장력이 좋았습니다.
주인공의 신중하면서도 섬세한 태도에서 자연스레 후반부의 성장을 예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직업인으로 이미 몇 년을 채운 저는 그 때로부터 떨어져 있는데요. 책을 읽는 동안에 잠시나마 다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왜 그때 저는 시작하는 사람의 아름다움을 모르고 스스로 재촉만 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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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레터는 '시'간과 장'소'에 맞는 콘텐츠를 소개하는
콘텐츠 TPO 큐레이션 뉴스레터입니다.
시소레터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에서 보실 수 있어요.
매주 목요일, 시소레터가 메일함으로 찾아갑니다 :)
시소레터는 답장을 환영합니다!
당신의 30초가 흥선과 리코를 기쁘게 합니다.
오늘 시소레터는 어떠셨나요?
어디가 좋고, 어디가 아쉬웠는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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