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질도 많이 해서 넓진 않고 좀 깊을 것 같긴 해요 안녕하세요, 시소레터입니다.
눈 깜빡하니 3월이 돌아왔습니다.
또 다른 말로는 개학과 개강 시즌이 돌아왔다는 건데요.
대학원생인 에디터에게도 믿기지 않은 그날이 밝았습니다.
(다행히 저는 이제 막학기예요. 예!)
다시 불확실함을 껴안고 한 학기를 시작해야 한다니,
떨리기도 하고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이 되는데요.
그럴 때 두 어깨를 다독이며 또 반년을 잘 보내봐야죠.
우리에게 오늘 레터 주제가 살짝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도 같습니다.
물론 직장인, 무직, 자영업자 등등 다른 구독자분들도
생각하는 마음으로 준비해 봤어요. (진심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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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갓 졸업한 것도 아닌데,
엉뚱한 곳에 삽질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나를 발견할 때면 한숨이 푹.
이 나이쯤 되면 옳은 길을 척척 찾아갈 줄 알았는데,
나름 고심해 꺼내어 보인 결과물이 보잘 것 없을까
열심히 다듬고 포장하려 애쓰는 스스로가 참 멋이 없다고도 느낍니다.
하지만 이렇게 고민하고, 불안해하며 헤맨 것들이
훗날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이 됨을 문득 느낄 때도 있죠.
이번주는 ‘헤맨만큼 땅이 된다’는 콘텐츠들을 가져왔어요.
열심히 헤매고 성장할 앞으로의 시간들을 기대해 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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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번에 꼭 들어맞는 퍼즐조각이 아니어도 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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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할 자격
👉 작가 : 희정
누구나 제 밥벌이는 해 먹고살아야 하니까, 사회에서 내가 돈을 벌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이미 잘 구축되어 있는 환경에 녹아드는 것이겠죠. 이 책은 제목처럼, '일할 자격'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빌려, 과연 그 자격이 무엇인지, 그게 정말로 정당한 것인지를 되짚어 보는데요.
매일같이 화장을 하고 옷을 잘 차려입고, 팀장에게 잘 보이기 위해 불필요한 야근을 하고... 사회적으로 좋은 직장에 취업한 뒤에도 계속해서 나 스스로를 감추고 가면을 써야 한다는 사실이 불편했다는 미리 씨의 이야기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습니다. 그전에, '스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n개의 아르바이트들과 자기계발은 열심히 산 것이 아니라는 효빈 씨의 말에 페이지를 넘길 수가 없기도 했고요. 챕터를 넘길수록 노동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자격의 문턱이 이렇게나 높았음을 깨달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리 씨와 효빈 씨를 비롯한 인터뷰이들은 긴 방황 끝에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결말은 아니었지만, 완벽하지 않아도 자신이 진정으로 노동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시작하기도 하고, 노동을 하고 싶은 마음 기저의 진짜 이유를 위해 타협점을 찾아내기도 하고요. 판에 꼭 들어맞는 퍼즐 조각이 되진 못하더라도 작은 점으로 그 자리를 천천히 채워나가는 그 모습들이 멋졌습니다. 그들이 지금 선택한 현재가 틀렸음을 알게 되더라도, 그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 걸음인지를 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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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로그 | 41화 크루즈에서 생긴 일
성인이 되고 생긴 병이 있습니다. 무얼 하나 시작할 때도 제대로 하고 잘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인데요. 조금씩 마음에서 자란 강박은 저를 졸졸 따라와, 결국 새로운 것에 대한 흥미도 팍 식어버리게 만들었습니다. 얼마 전 취미로 시작한 수채화도, 제 마음은 미켈란젤로에 가있는 데 손끝에서는 따라와 주지 않으니 붓을 영 안 들게 되더라니깐요.
이런 의미 없는 자기 검열을 하는 나 자신이 참 멋이 없다고 느껴질 때, 무작정 새로운 분야로 도전해 보는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EBS 다큐 시리즈인 <PD로그>는 특별한 출연자가 아닌, PD 자신이 직업 현장으로 뛰어 들어가는 일명 ‘워크돌’ 같은 프로그램인데요.
평소에 기획과 촬영만 하던 그들이 전혀 새로운 환경에 뛰어드는데, 결과는 늘 꽝이냐고요? 아닙니다. 크루즈에 승선해 뉴비 가이드로 활동하는 황 PD처럼 본인만의 직업의식을 반짝일 수도 있거든요. 물론 전혀 해보지 않은 일이기에 초반에는 어설프게 실수도 하지만 결국 자신만의 에피소드를 완성해 나갑니다.
각 체험을 끝까지 지켜본 입장이라면, 결코 그들의 허둥지둥함이 의미 없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깥으로 뻗어 나가려는 새싹처럼 보이던걸요? (실제로 PD 분들의 나이가 많든 적든은 전혀 신경 쓰이지도 않고요.) 타인으로부터 얻은 감상이 제게로 다시 와닿는 순간, 제 자기 검열이 얼마나 어설픈 장막이었는지 깨달았습니다. 그 막을 걷히고 이제 저도 에피소드를 시작해 봐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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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20대에게
👉 임한올 Hanol Rim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서 무엇을 바꾸고 싶냐는 질문을 들으면, 늘 돌아가고 싶지도, 바꾸고 싶지도 않다고 대답하는 미래지향적인 사람입니다만, 과거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으면요. 잘 몰라서 방황하고, 어려워서 도망치고, 숨어버린 나에게 그러지 말라고 충고하기보단, 그것 역시 그때만 할 수 있는 것이니 열심히 하라고 하고 싶습니다. 열과 성의를 다해,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성대모사와 노래 커버 등으로 인기를 끈 유튜버 임한올이 지난해 30대를 맞이하며 올린 이 영상에는, 자신의 20대에게 해주고 싶은 9가지 말이 담겨 있는데요. ‘다른 사람의 평가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지 말자.’, ‘용기 내서 많이 표현하자.’,’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젊을 때라는 것을 기억하자’ 등, 그냥 읽어보면 당연한 말들 같지만 정작 그 순간에는 잘 떠오르지 않았을 말들. 지나간 과거에 남기는 말이라고 했지만, 어쩌면 미래의 나에게도 잊지 말라는 당부 같기도 했습니다.
과거의 내가 다 겪어 봤기에 할 수 있는 말들이라는 건, 결국 그 모든 것을 겪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거라는 뜻이겠죠. 열심히 헤매고 다니던 그 시절의 내게 참 잘했어요 도장을 쾅 찍어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덕분에 미래의 나는 아마 조금 덜 헤맬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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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밤
👉 작가 : 루리
학창 시절에 읽었던 시 중에 아직도 기억에 남는 한 편이 있는데요. 수심을 모르는 나비가 바다를 내려가 헤맨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구절이 몇 년이 흐른 지금도 계속 맴도는 건 살아 있는 한 헤매는 건 당연한 일이라서가 아닐까 싶은데요.
그게 나비에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닌가 봐요. 제가 펼쳐든 또 다른 책에서는, 지평선 너머 자신만의 땅을 찾아가는 코뿔소와 어린 펭귄이 나오거든요. 삶은 우리에게 안전한 품만을 내어주지는 않기에 그들은 걷고 또 걷습니다. 때론, 총과 차를 가진 인간들이 다가와 위협하기도 하고. 지친 다리가 채 떨어지지 않아 고생하기도 하지만요. 그들은 절대 머무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아무도 그 땅이 어디인지, 얼마나 더 걸어야 그곳에 다다를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심지어 이 여정을 함께하는 코뿔소와 펭귄도 같은 땅을 바라볼 수는 없죠. 그들과 우리 독자에게 변하지 않는 진리는 아마도 이걸 겁니다. 살아 있는 한 우리에게는 헤매는 긴긴밤이 주어진다는 것, 그러나 이 여정이 끝날 때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우리의 땅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요.
*김기림 <바다와 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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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코'S PICK <미키17>
구매처 : 영화관
가격 : ₩ 15,000
#나를_괴롭히는_것도_구원하는_것도
너무 바쁠 때면, 몸이 한 열댓 개쯤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리코1은 청소하고, 리코2는 일하고, 리코3은 영화 보고…. 지난주, 이런 말도 안되는 상상이 현실이 된 영화가 개봉했어요. <기생충>으로 국내외 영화제를 휩쓴 봉준호 감독의 새 영화, <미키 17>입니다.
미키는 무한한 휴먼 프린팅을 통해 새로운 행성으로의 이주를 돕는, 다른 말로는 위험한 것들은 죄다 하는 실험체 익스펜더블(Expendable)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요. 사업에 실패하고 거액의 빚 때문에 사채업자에게 쫓겨 그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라는, 너무나 인간적인 이유로 선택한 이 직업은 반대로 너무나 비인간적입니다. 손목이 잘려나가고, 유해한 가스를 마시고, 엄동설한에 버려져도 다시 프린팅 되면 그만이니까요. 죽고, 눈을 뜨고, 다시 죽는 이 끝이 보이지 않는 노동에 익숙해진 미키의 모습이 참 묘했습니다. 죽으면 어떤 기분이냐는 동료들의 물음에 말이 없던 미키는 속으로 어떤 대답을 했을지 자꾸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최근 본 영화들이 유독 자아에 관한 것들이 많았는데요. 한층 더 복잡해진 사회, 바빠진 일상에서 내가 나를 지키고, 나를 구원하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라는 반증 같기도 합니다.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가 많은 영화인데, 홍보차 내한한 배우들과 봉 감독님의 인터뷰가 참 많아 좋더라고요. 틈틈이 챙겨보며, 리코2도 즐겁게 해 줘야겠습니다. 앗, ‘멀티플’로 신고하시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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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선'S PICK <나이프를 발음하는 법>
구매처 : 서점
가격 : ₩ 16,800
#나이프처럼_다가와 #버터처럼_스미는_단편들
제게 소원이 있다면, 모 배우처럼 해외 원서를 직접 번역해서 보는 것인데요. 현실은 번역가를 고용할 여유도, 직접 원서를 읽을 외국어 능력도 없어서 무작정 기다리며 버티고 있습니다. 평소 기다리던 책 중 하나가 바로 이 책입니다. ‘나이프를 발음하는 법’이라는 제목부터, 제 가슴속 오래된 한 장면을 떠오르게 했거든요.
또래보다 살짝 영어를 늦게 배운 탓에 영어 시간에 비슷한 경험이 있던 저는 ‘knife(나이프)’의 ‘k’가 묵음인지 모르는 아버지와 딸의 마음을 지나칠 수가 없었어요. 다만 다행인 건, 아픈 기억도 시간이 흐르면 이런 식으로 타인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 같습니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와서, 라오스계 캐나다인인 작가는 이민자를 비롯해 사회에서 소외받는 이들을 주인공으로 그들만의 놓칠 수 없는 불편한 순간을 활자로 기록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작가는 일상의 아주 작은 일면을 잘 녹은 버터처럼 펼쳐내 결코 무겁지는 않으면서도, 독자로 하여금 계속 그 일면을 지켜보게 만들어 내는데요.
표제작의 부녀는 이제 ‘k’이 묵음인 걸 알겠지만, 지금의 저처럼 그 순간을 잊지 않고 있겠죠? 책에 수록된 단편 하나하나를 지나쳐가 보며, 우리에게 마치 나이프처럼 소리도 없이 날카롭게 남아 있는 기억은 언제였을지 떠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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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레터는 '시'간과 장'소'에 맞는 콘텐츠를 소개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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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레터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에서 보실 수 있어요.
매주 목요일, 시소레터가 메일함으로 찾아갑니다 :)
시소레터는 답장을 환영합니다!
당신의 30초가 흥선과 리코를 기쁘게 합니다.
오늘 시소레터는 어떠셨나요?
어디가 좋고, 어디가 아쉬웠는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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