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자신만 아는 자기 모습 있나요? 💌 구독자님께 드리는 편지
안녕하세요, 시소레터입니다.
기후 위기는 위기인가 싶었습니다.
입추가 지나도 영 시원해지기는커녕,
지칠 줄 모르고 장마와 열대야가 계속되어서요.
그런데 웬걸, 처서가 지나니 약간 선선해진 것 같은 건 저만 느끼는 게 아니죠?
제가 알던 가을이 영영 없던 일이 될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참 다행이라고 느낀 요즘입니다.
발목에 채이던 낙엽이나 은행을 얼른 제 눈으로 보고 싶은데요.
다시 긴 팔을 입는 그날이 오면 날씨에 잘 어울리는 콘텐츠를 또 준비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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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양각색의 조각 뒤에 숨은 풍경이 보이시나요?
<봄날은 간다> - 한숙, 할매공방 作 (교동미술관에서 직접 촬영)
한 사람에게도 여러 모습이 있다고들 하잖아요.
회사에서의 나와, 친구들과 있을 때의 나,
낯선 환경에 똑 떨어졌을 때의 나….
나에겐 어떤 모습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정말로 나만이 알고 있는 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어요.
나는 진짜 나의 몇 프로를 보여주고 있을까,
아무도 모르는 나의 모습은 뭘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생각보다 적지 않겠더라고요.
이번주는 ‘나만 알고 있는 나’에 대해
콘텐츠를 가져와 봤어요.
구독자님만 알고있는 구독자님은 어떤 사람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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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사소한 것들
👉 작가 : 클레어 키건
이 날씨에 크리스마스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읽는 건 이상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페이지 너머 가본 적도 없는 아일랜드의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에어컨 바람을 쐬며 저는 그곳에서 석탄을 파는 남자의 생각을 읽게 되었는데요.
펄롱은 성실한 데다 평판도 좋은 장사꾼입니다. 작은 친절도 잊지 않고 보답하고, 제게 맡겨진 주문은 꼼꼼하게 해내죠. 사랑스런 딸과 부인까지 가진 그이지만 삶은 의문스럽고 어딘가 탐구되지 못한 구석이 분명 남아 있는 듯 했습니다.
너무 성실했던 탓일까요. 평소보다 일찍 마을 교회에 배달을 가던 그날. 뜬소문으로만 듣던 풍경을 눈앞에 마주하게 됩니다. 물음표투성이었던 인생에 또 다른 질문이 던져지고, ‘이토록 사소한’ 일상에 새로운 국면을 마주합니다.
인생의 불편한 물음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는 점에서 '나'를 끄집어 내게 합니다. 답을 정하기 까지 떠오르는 생각들은 나로부터 나왔기에 나답기도 하고, 또 신기하게도 아주 나답지 않기도 하죠. 결국 그 시간 동안에는 내가 나를 오롯이 마주하게 됩니다. 맨살로 맞닿는 질문은 불안하고 고통스럽지만, 그러므로 그 결심 역시 내 일부가 될 수 있습니다. 때론, 아주 사소한 일상에 균열을 만들어 내기도 하죠. 펄롱이 겪은 일들처럼요.
P.S "10월에 나무가 누레졌다. 그때 시계를 한 시간 뒤로 돌렸고 11월의 바람이 길게 불어와 잎을 뜯어내 나무를 벌거벗겼다. (후략)" 아일랜드의 퍼석한 겨울을 묘사한 첫 문장에서부터, 작가의 깊은 표현력에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그 겨울 펄롱은 어떤 일을 겪었는지 궁금하시다면 꼭 책을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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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 원작 : 이민진
👉 출연 : 김민하, 윤여정, 이민호 외
주인공 선자를 중심으로, 3대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파친코>가 시즌 2를 공개했습니다. 어지러운 시대의 굴곡을 따라 그의 인생도 쉽지 않은 일 투성입니다. 헤어지던 날 어머니를 붙잡고 엉엉 울던 선자는 이제 두 손 걷어 붙이고 온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세월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는데요.
하지만 시간이 흘렀다고 선자가 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린 시절 또렷한 눈빛 그대로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었죠. 그걸 지켜볼 수 있는 건 드라마를 보는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이었습니다. 좁은 집에서 살을 부대끼며 사는 가족들도 선자의 모든 면면을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가 얼마나 부끄럽지 않고 열심히 사는지는 선자와 우리만 아는 비밀과도 같았습니다.
내 인생, 나를 위해 살아온 순간들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참 애틋하고 자랑스럽습니다. 매 순간 부끄럽지 않게 사는 선자를 애정을 담아 바라보게 되는 것처럼, 우리가 우리답게 노력한 그 시간을 조금은 더 기특하게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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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어 플레이스 오어 마인
👉 출연 : 리즈 위더스푼, 애쉬튼 커쳐 외
20년 지기 소꿉친구 데비(리즈 위더스푼 분)와 피터(애쉬튼 커쳐 분)는 각자 우연한 계기로 마침 상황이 맞아떨어지며,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의 각자의 집을 바꿔서 생활하게 되는데요. 거의 매일같이 통화를 하며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주고받은 절친이지만, 막상 서로의 집에 가보니 생각보다 자신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많았음을 알게 됩니다. 데비의 집 정원을 관리해 주는, 데비에게 흑심을 품은 옆집 백수라던지, 모델하우스와 다름없는 텅 빈 피터의 집 컨디션 같은 것들이요.
그리고 둘 모두 가장 내밀한 곳에 있는 속마음은 꽁꽁 숨겨두었는데요. 피터는 자신이 집필한 소설을 집 오븐에 보관해 두고 한 번도 이야기한 적 없었고, 여전히 책을 좋아하지만 현실과 안정을 택한 데비는 관련된 얘기를 꺼낸 적이 없습니다. 서로가 책을 엄청나게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상대를 배려하느라, 반대로 내가 상처받을까 애써 삼킨 거죠.
가볍게 킬링타임용으로 보게 된 영화였는데, 보는 내내 ‘나만 알고 있는 나’를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얘기하지 않으면 모른다고 하잖아요. 어쩌면 그건 방어기제일지도 모르겠어요. 내가 그 ‘나’를 드러냈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요.
🍋 물론 집을 바꾸면 이런 불상사도 생기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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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 depression
👉 노래 : girl in red
누구나 하나쯤은,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 있죠.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하는 나, 맛없는 음식을 먹고 나도 모르게 나오는 못생긴 표정 말고도요. 사실 굳이 숨기지 않아도 되는데도, 아무도 모르게 하고 싶은 내가 있잖아요.
저는 ‘우는 모습’이요. 분명 어렸을 때는 딱히 그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저도 모르게 제가 우는 모습을 자꾸 숨기게 되더라고요. 아무도 없는 집 화장실에서, 모두가 잘 때 이불속에서, 울고 싶은데 장소가 마땅치 않을 땐 혼자 영화관에 갑니다. 영화관은 넓고 크지만 어둠 속이라 잘 안 보이기도 하고, 웬만한 영화에서는 한 번쯤 감동적인 장면이 나오니까요. (물론 좀 의아할 때도 있었겠지만요.) 어떤 사건 때문에 울고 싶을 때도 있지만, 때로는 그냥 눈물을 터뜨리고 싶을 때도 있잖아요. 내가 나에게 질문하고, 대답하고, 또 나를 위로해주고 싶은 그럴 때면 그냥 울면서 해소하는 게 습관이 됐어요.
이 곡을 들으면, 그런 제가 특별히 이상한 사람이라고 느껴지지 않아서 좋아요. 매년 여름이 되면 나를 자책하고, 회의감을 느끼는 이 곡의 화자가 꼭 제 모습 같아서요. 구독자님이 꽁꽁 감추고 싶은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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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코'S PICK <손해보기 싫어서>
구매처 : 티빙
가격 : ₩ 5,500
#유치한_상상을_현실로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요즘 재미있는 드라마들이 막 쏟아져 나와서 매주 챙겨보느라 바쁜데요. tvN에서 또 기다리고 있던 작품 하나가 방영을 시작했어요. 로코장인 신민아 배우와, <펜트하우스>로 급부상한 김영대 배우가 어떤 케미를 보여줄지 궁금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귀엽고 웃기더라고요.
드라마는 손해 보기를 끔찍이도 싫어하는 주인공 해영(신민아 분)이 제목 그대로 '손해 보기 싫어서' 가짜 결혼을 하게 되는 이야기인데요. 6개월 전에 헤어진 전 남자친구 결혼식에 갔다가 양다리를 걸쳤던 사실을 알게 되고, 사내 복지와 승진은 미혼 여성에게는 오지 않는 기회라는 점을 깨닫고 결혼을 결심한 거거든요. 사회생활을 하면서 매년 경조사로 지출되는 금액을 생각하면, 도대체 '뿌린 대로 거둘 날'은 언제인가 싶잖아요. 회사 복지도 결혼과 출산을 권장하기 위해 기혼 가정에게 더 초점이 맞춰진 것도 맞고요. 머릿속으로 상상만 했던 것을 해영이가 해보는 느낌이라, 웃으면서 봤지만 한 편으로는 좀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아, 극 중 해영이와 동거하는 가족 아닌 가족 같은 동생 자연(한지연 분)은 웹소설 작가인데요. 1화에서 자연이 쓰고 있는 소설 <사장님의 식단표>가 잠깐 나오는데, 이 드라마의 스핀오프로 TVING 오리지널로 제작된다고 하더라고요. 나름의 세계관을 구축한 느낌이랄까? 일석 이조로 도장 깨기 한다는 마음으로 챙겨보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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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선'S PICK <사물은 어떤 꿈을 꾸는가>
구매처 : 국립현대미술관
가격 : 24세 이상 성인 ₩2,000
#사물의_이름 #무슨_꿈을_꿀까요
구독자님은 사물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본 전시에 앞서 미술관이 제게 던진 질문도 이와 같았습니다. ‘사물이 사물이지, 물건 아닌가’ 하며 들어간 질문 링크에 남긴 다른 사람들의 답변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우리 주변을 지키는 이것들을 뒤집어 생각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그래서인지 전시에서 마주한 작품들도 아주 익숙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습니다. 당장 어제라도 썼다 버렸을 플라스틱 비닐 포장부터, 자전거와 소총까지. 현대인이라면 그 쓸모를 모르지 않은 것들이 어떻게 현대 미술이 된다는 걸까요?
우리가 사물을 이용하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 사물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라는 전시 안내 문구를 보자, 그 익숙함을 아주 조금은 비틀어 볼 수 있었습니다. 물체를 구성하는 물질을 질량 단위로 네모나게 표현한 한 작품에서는 어디서 온 지도 모를 것들이 내 손아귀에 잡혔다는 점에서 소름이 돋았고요. 놀이터나 운동장을 떠오르는 작품에서는 직접 공을 잡고 튀겨볼 수 있었는데, 관람자들 사이에서 맘 편히 움직이는 것도 골대에 집어 넣는 것도 맘처럼 되지 않았습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사물의 속성에 제대로 당한 시간들이었어요.
다 안다고 생각한 것들을 다르게 보는 경험, 그것이 현대 미술의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그래서 잘은 모르지만 자꾸 미술관을 찾게 되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그날 이후로 이름으로만 바라보던 것들을 조금은 뚫어지게 쳐다보게 됩니다. 미술관에서의 작품을 마주하던 그때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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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레터는 '시'간과 장'소'에 맞는 콘텐츠를 소개하는
콘텐츠 TPO 큐레이션 뉴스레터입니다.
시소레터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에서 보실 수 있어요.
매주 목요일, 시소레터가 메일함으로 찾아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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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레터는 답장을 환영합니다!
당신의 30초가 흥선과 리코를 기쁘게 합니다.
오늘 시소레터는 어떠셨나요?
어디가 좋고, 어디가 아쉬웠는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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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보고서 bogoseo.biz@gmail.com아쉽지만 수신거부 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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